소개
Clair Obscur: Expedition 33은 2025년 4월 24일에 출시한 턴제 RPG 게임입니다. 프랑스 개발사 Sandfall Interactive에서 제작 중이고,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의 프랑스에서 영감을 받은 독특한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5년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와 더게임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상(Game Of The Year)를 수상했습니다.
이 게임은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독보적인 특징을 가지면서도 전투의 재미를 잘 살려서 깊이와 대중성 모두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게임임에도 아름다운 배경 음악이 거론되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간단한 게임 플레이 후기를 써내려가면서 이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유저에게 선사하는지 몇 가지 인상 깊은 장면들을 다루어보겠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프렌치 로맨스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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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프롤로그를 진행하다가 이 장면에서 알아차렸습니다. '아 이거 프랑스 감성이다!'. 이 게임은 프랑스 제작사에서 만들었다는게 새삼 생각나더라구요. 여러분도 느껴지시나요?
프랑스 로맨스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아래 더보기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베티 블루(37°2 le matin) 라는 프랑스 영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너와 나 둘만 존재하는 듯한, 내일이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하는 느낌의 로맨스죠. 아무것도 재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고 상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상당히 퓨어하고 강렬한 감각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감도 좋습니다. 쓰면서도 좋아하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RVWWzp1nWrk)
전투
이 게임은 턴제와 QTE(패링), 이 두 가지를 활용한 전투 재미를 제공합니다. 각각 어떤 재미와 유저 성향을 공략하는지 알아봅시다.
턴제 - 전략적 전투의 매력

기술 트리와 속성(화염, 번개, 얼음, 대지 등)을 활용해서 나만의 전투 전략을 빌드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치유의 빛이라는 공격, 치유가 필요할 만한 데미지를 입지 않았기에 한번도 사용해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게임 진행 중 어떤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빈사 상태급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제 팀 캐릭터 2명이 죽었습니다. 이때 저는 드디어 아이템을 사용해서 '부활'이라는 아이템을 사용해보고 치유를 사용해보았습니다.
이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 또한 개발자가 '치유' 또는 '부활' 스킬을 사용해볼 수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설계한걸까? 높은 확률로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유저)는 설계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치유 또는 부활이라는 선택을 하면서 팀원을 살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땐 '내가 역경 속에서 팀원을 구했어!' 라고 효능감을 느끼며 설계된 턴제의 매력을 경험했습니다. 역시 잘 짜여진 게임은 유저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잘 설계해야함을 새삼 되새깁니다.
턴제의 매력은 전략적 선택에서 옵니다. 한정된 자원과 기회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내는 선택과 그 결과로 부터 오는 보상을 통해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실시간 전투와 달리, 전투 상황에서 미래를 가정하게 합니다. 다음 수까지 설계하고 여러 말(캐릭터)들의 오케스트레이션까지 고려하는 지능적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육감적 본능적 전투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QTE - 본능적 전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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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제 게임이라고 하면 전투가 루즈할 여지가 다분한데 이 게임은 QTE(Quick Time Event)를 활용해서 긴박한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전투 몰입감을 줍니다. 공격에서는 Perfect Timing을 사용하여 더 큰 대미지를, 방어에서는 패링(회피, 카운터)으로 피해 감소나 반격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저 같은 발컨/반응 속도가 느린 유저들에겐 다행이게도 해당 요소가 치명적이지는 않게, 하지만 패링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기에 짜릿한 도전을 유도할 수 있게 전투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Try해서 성공하면 좋고 아님 안전하게 하는 마인드. 보통 이렇게 전투에서 패링을 포함하는 것은 특히 대작 콘솔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익숙하고 당연해진 요소가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마다 본능적 전투를 좋아하는지 전략적 전투를 좋아하는지 등의 성향에 따라 게임 선호가 갈릴 수 있는데 이 게임은 그 리스크를 많이 줄였네요.

제가 워낙 게임 전투나 스탯 설정에 무지하다보니 1시간 동안 보스전을 치루는 경우도 생겼습니다ㅎㅎ. 무려 스토리 모드였다는 점...^^; 이거 이후로 픽토스 설정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것저것 설정하니 향상된 전투력이 체감되었어요.


그래도 일전에 모바일 RPG 플레이하면서 딜 몰빵의 위력과 빠르게 전투를 끝내는 것이 전투 피로도를 적게한다는 점을 체감한 적이 있어서 웬만하면 공격력과 치명타 확률에 몰아 박았습니다. 대신에 픽토스는 생명력, 방어, 치명타가 패시브로 달린 것들을 장착해서 밸런스를 맞춰주었습니다. 아직 속도 스탯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깨우치지 못했습니다(근데 치명타 찍으면 속도와 공격력도 같이 올라줌). 흠 근데 딜 계수가 체감되는 캐릭터가 있고 아닌 캐릭터가 있더라구요. 루네는 초반에 효율이 잘 나왔는데 후반에 가서는 안 나왔네요.
★ ★ ★ ★ ★ ★ ★ ★ ★ 스 포 주 의 ★ ★ ★ ★ ★ ★ ★ ★ ★
여기까지가 게임에 대한 소개입니다.
메인퀘스트(2막)를 아직 완주하지 않으신 분께서는 완주하신 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
이 게임이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합니다.
1. 운명을 마주하는 사람들

잔혹한 시체로 남겨지는 대신 꽃잎으로 감싸져 소멸되는 연출로 죽음을 표현합니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모습에 그 공허함은 극대화됩니다.
2. 고유 명사 고마주(Gommage)
프랑스어로 gommer는 '지우개로 지우다'라는 동사입니다. 여기서 핵심 명사인 gomme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고무', '지우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프랑스어로 행위를 명사화하는 '-age'라는 접미사를 붙여서 탄생한 단어가 바로 Gommage(고마쥬)가 됩니다.
대사를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는 번역되지 않고 고마주라는 고유명사로 남습니다.
2막 이후 세계관에 대한 진실이 풀리고 나면 왜 프랑스어로 죽음을 뜻하는 mort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작가가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 밀도 높은 세계관 설정이 참 깊이 와닿습니다.
3. 선봉 원정대원들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33 원정대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기보다 이 원정에 연속성을 부여함으로써 과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달합니다. 이를 통해 이 이야기는 죽어간 그리고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의 서사가 되고 사람들의 목적 의식을 더욱 애달프고 간절하게 강조하게 되며 33원정대는 그 대표성을 지닌 존재로 자리합니다. 수 십 년간 이어져 온 희망을 향한 움직임은 그만큼 무게가 내려 앉습니다.
4. 구스타브의 죽음
앞서 고마주의 아름다운 연출을 짚었지만 모든 죽음이 항상 시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다뤄지지는 않습니다. 고마주가 아닌 의지의 전투 끝에 물리적 죽음을 맞닥뜨리면 육체(거두어지지 않은 크로마 덩어리)는 사라지지 않고 이 세상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33원정대가 탐험할 때 마다 마주하는 이전 원정대의 시체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일깨워줍니다.

구스타브의 죽음을 연출하는 장면에서는 마찬가지로 장미꽃이 휘날리지만, 피에 흠뻑 젖은 그의 시체는 그대로 남아 이 비극의 고통을 마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새겨줍니다. 이 장면은 이 원정대가 나아가야하는 방향과 이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야만 하는 각인시켜줍니다. 이미 일찍이 부모님을 잃은 상태로 살아왔기에 원정의 동기를 강하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마엘의 의지에 연료를 채워주고 가속을 가합니다.
5. 구스타브의 죽음을 그의 고향에 고하는 방식

33원정대의 성공을 축하하는 루미에르. 기뻐하며 구스타브의 귀환을 기다리던 누이와 제자들에게 마엘은 그 어떠한 말도 건낼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함부로 입에 담기에도, 그의 귀향을 기다렸던 가족들이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아프고 힘겨운 상실감과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제자의 맑은 눈동자 빛과 밝은 미소가 사라지고, 그의 일지를 받아들기를 거부하며 도망치는 모습에서 구스타브의 죽음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담담하고 체념적인 내적 슬픔이 느껴지는 누이(어른)의 반응과 현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도망가는 제자(아이)의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이 대비를 이루는 덕분에 구스타브의 죽음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무겁고 숭고하게 다루어집니다.
페인트리스만큼 치밀한 게임 창조주의 설계
이 게임은 단 한 장면도 그냥 설정된 것이 없다고 여겨질 만큼 장면 간 밀도가 높습니다.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세계관의 일관성 아래 창조주(개발진)의 의도가 담긴 단서들로 빽빽하게 차있습니다.
엔딩을 보고 나면 아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 하고 스쳐 지나가는 설정과 이전 장면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 왜 베르소의 0원정대 일가족만 지워지지(고마주되지) 않고 남았는가?
베르소는 처음 33원정대를 만났을 때 자신들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영생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알고보면 이 영생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알린에 의해 철저히 설계된 것입니다. 캔버스 안에서 복제된 우리 가족(그림자)을 영원히 지키고 싶은 마음, 캔버스 안에서라도 베르소를 두 번 다시 잃고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이 투영된 굴레입니다.
■ 왜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달리 베르소만 페인트리스의 반대편에 섰는가?
베르소의 목적은 캔버스 안에서 영생이 지속되는 이 미련한 굴레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영생의 굴레 속에서 수 십 년간 동료들이, 친구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창조 생명(원정대)들이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것을 보며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그리움만을 위해 창조된 세계와 이 가짜의 삶이 덧없음을 깨달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그림자 가족들은 복제된 존재로서 그들만의 목적성을 가집니다. 이 세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존재 페인트리스를 죽이면 자신들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비록 복제품으로써 주어진 삶일지라도 하나의 가족을 지키고 싶은 의지를 가진 창조물들이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캔버스 속 세계를 보존하는 것이 창조된 자신들의 삶도 영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철학적 메시지
앎의 고통, 자각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이 컷씬은 제 빼이보릿 입니다. 감상 포인트를 짚자면요, 영어 대사를 시 그 자체로 느껴주시면 좋습니다.
I envy them
those who can't see,
those who know not that they are not,
and those who live light and free,
sins forgotten and thus absolved,
a fresh dawn in their playground
while we live in shadows, swimming in ink.
We are but a fragile dream,
a singular weed resisting, ever resisting,
that iron dud, that eternal law.
Those who can't see,
those who know not that they are not.
Do you know?
We are fellows
those who know not that they are not.
- 반복되는 구절과 운율
- Don't know가 아닌 Know not
- Not의 닫히는 소리
- 이중부정문
- 운율
- 밝고 가벼운 단어와 어두운 색감의 단어를 통해 대비감 극대화
- 그러나 말미에 같은 처지로 마무리 됨
특히 흑백 영상과 알리시아의 쇳소리가 나는 다친 성대의 목소리는 더욱 알리시아의 심연을 깊게 만들어줍니다.
빨간 약 vs 파란 약
이 게임의 엔딩의 본질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살아갈 것인가, 행복한 허구의 세상에 남을 것인가' 로 귀결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 '빨간 약, 파란 약' 개념은 이 갈등의 상징이 되었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게 존재하고 자신 또한 의미있는 영웅인 이 캔버스 속 세상에서 계속 살 것인지, 이 허영되고 거짓된 꿈을 그만 쫓고 기다리는 현실 속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존재론적 고뇌가 찾아오더라구요ㅎ.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까지는 절대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제 삶 이야기를 잠시 나누자면... 저는 원래 머리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낫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심장으로는 앎의 고통을 너무도 크게 느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느 시점부턴가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보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아하고 있더라구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감사하게도 제 주변에는 저를 햇살처럼 여겨주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제 내면이 상처 없이 고와야 행복 가득한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능한 맑고 따스한 마음을 유지하고자 애써 불편한 생각들을 외면하곤 합니다. 마엘의 처지와는 다르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베르소처럼 현실을 마주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저한테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베르소를 선택했습니다. 마엘이 한심하거나 틀렸다 생각한 게 아니라, 제가 마엘같이 느껴졌기에 마엘을 위해 베르소를 선택했습니다. 마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지지했습니다.
솔직히 선택하자마자 엔딩을 보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행복한 허구의 세상을 찢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워버리고 현실로 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비통했습니다. 과연 잘 한 선택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마주할 날이 온다면 그 때 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닌 그럼에도 그릴 것인가.

이 게임은 매년 새겨지는 예정된 죽음과 운명 속에서 희망과 내일을 찾기 위해 원정을 나아가는 루미에르 사람들의 이야기... 로 시작했으나 기저에는 가족에 대한 미련으로 꾸며낸 거짓된 세상이라는 숨겨진 진실이 있었고, 그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를 그렸습니다. 비록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제 자체를 바꿔버리는 반전 이야기였지만, 처음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페인트리스의 창조물인 시엘과 루네가 페인트리스를 깨부순 뒤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이나 이 세상이 거짓되었음을 깨달은 뒤에도 가족을 만날거라는 희망을 가지는 태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요? 그 삶의 목적은 어떠한 전제 위에서 작동하나요? 어떠한 전제도 필요없는 삶의 목적이 있나요? 무엇을 그릴 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루미에르 사람들이야말로 마엘과 베르소의 선택을 초월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운명을 거스르면서도, 운명조차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은 뒤에도 삶의 목적을 잃지 않고 투쟁하는 이 창조물들에게서 저는 가장 완성된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Clair (빛) Obscur(어둠) : 33 Expedition 후기였습니다.
